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계급 특진 (문단 편집) == [[독일군]]의 사례 == 2차 대전 당시의 나치 집권기 [[독일 국방군]]에서도 전시 진급이 매우 빈번했으나, 직책에 따르는 계급을 대부분 한시적으로 부여한 미군과는 약간 달랐다. 즉 병이나 부사관, 초급장교의 경우는 전공에 따라 부여받은 계급에 걸맞는 직책을 맡기고, 장관급 간부가 특진하는 것은 특정 직책의 적임자로 선임되었으나 계급이 낮은 경우였다. 물론 전사하거나 순직한 후 계급을 추서받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발터 루바르트''': [[프랑스 침공|프랑스 전역]] 당시 제10기갑사단 공병대 소속으로 열한 명의 특공조를 지휘하여 마스 강변의 [[프랑스군]] 진지를 점령한 후 [[중사]]에서 [[소위]]로 특진 * '''[[후고 슈페를레]]''', '''[[알베르트 케셀링]]''': 프랑스 전역 종결 후 [[아돌프 히틀러]]가 주관한 승전 행사장에서 [[중장|항공대장]]에서 [[원수(계급)|원수]]로 2계급 특진[* 이날에는 비단 두 사람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 참여했던 독일 국방군 육군 상급대장 9명, 공군 상급대장 1명(에르하르트 밀히), 공군 대장 2명(후고 슈페를레와 알베르트 케셀링)이 해당 장소에서 동시에 원수로 진급하였다. 참고로 전쟁 전인 1938년부터 원수를 달고 있었던 헤르만 괴링 역시 해당 장소에서 일반 원수보다 격이 높은 제국원수로 진급하였다.] * '''쿠르트 차이츨러''': [[육군]] [[참모총장]] [[프란츠 할더]] [[상급 장교|상급대장]]의 경질 이후 [[준장|소장]]에서 [[중장|보병대장]]으로 2계급 특진 * '''[[카를 되니츠]]''': [[아돌프 히틀러]]와의 마찰 후 사임한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독일군/원수|원수]]의 후임으로 [[대장(계급)|대장]]에서 상급대장을 건너뛰어 원수로 2계급 특진 * '''[[오토 에른스트 레머]]''':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당시 그로스도이칠란트 수도경비대대장으로서 거사 가담자들을 체포하고, 그 공으로 [[소령]]에서 [[대령]]으로 2계급 특진, 이듬해 1월에는 [[준장|장군]]이 되어 [[베를린 공방전]]에 참여 * '''발터 폰 휘너스도르프''': 제4기갑군 사령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 밑에서 제6기갑사단장으로 복무하던 중 소련군 저격수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서 사망, 소장에서 [[소장(계급)|중장]]으로 사후 1계급 추서 * '''하인츠 브란트''':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당시 동프로이센의 총통 지휘본부에서 회의 참석 도중 폭발에 의해 치명상, 이튿날 사망. 사후 대령에서 소장으로 1계급 추서. * '''귄터 코르텐''': 위의 하인츠 브란트와 같은 사례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당시 동프로이센의 총통 지휘본부에서 회의 참석 도중 폭발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이후에 급하게 후송되었으나 상처 부위가 낫지 않는 바람에 이틀 뒤에 사망. 사후 항공대장에서 상급대장으로 추서[* 해당 추서로 인해 귄터 코르텐은 독일 국방군 공군에서 마지막으로 상급대장으로 진급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참고로 정상적으로 공군 상급대장에 진급한 마지막 인물은 [[쿠르트 슈투덴트]] 인데, 코르텐과 달리 대전 말기에 영국군에 포로로 잡힌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종전 이후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형기를 살다가 석방된 이후에는 천수를 누리다 1978년에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